51쪽
"믿을 수가 없는데요."
"믿게 될 거야. 그리고 믿어야 돼.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니까.
지금껏 자네는 현실에 눈을 감고 살아왔을 거야.
그러나 이제 그럴 수가 없어."
211쪽
그것은 어려서부터 누군가로부터 깊이 사랑받지 못한 자의 숙명적인 어리석음일수도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 역시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날 내가 느낀 열락감.
그 지고의 행복감이 나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종의 행운이라는 것도 그런 심사를 부추겼을 것이다.
사랑이 어찌 노력과 재능으로 되랴? 그것은 정말 운명이거나 우연인것이다. 정말 딜레마이다.
사랑의 기쁨은 그 예기치 않음에서 오는데, 정작 그 예기치 않음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떨며 그것이 제 손아귀를 빠져나갈까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379쪽
내 마음속의 패배주의는 언제나 낙관주의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돈이 왜 필요해? 그런 돈 없이도 잘살아왔잖아?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이런 달콤한 유혹이 실은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말의 다른 버전 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유독한 희망 대신 달콤한 무위로의 도피를 선택해왔던 것이다.
391쪽
어쩌면 그녀가 예쁘고 부유하다는 것도 핑계일지 몰라.
그냥 너는 현실의 여자로부터 언제나 도망치고 있었던거야.
왜? 그 여자들이 결국은 널 싫어하게 될까봐. 그전에 먼저 달아나는거지.
너는 끊임없이 그 핑계를 찾고 있어. 내가 볼 때 너는 정신적 불구야.
완벽하게 자기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하긴, 그것도 다 지 팔자지.
425쪽
"그럼 그쪽 일은 이제 다 해결된 거야?"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실은 '그쪽'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거기서 배운 것은 하나 있어."
"그게 뭔데?"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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